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는 과연 행복했을까?

지난 37일 미국 CBS는 영국의 해리왕자 부부와 오프라 윈프리의 특별 인터뷰를 방송했다. 이날 해리 왕자와 매건 마클 왕자비는 논란이 될 만한 폭탄 발언들을 쏟아내면서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그 진위는 둘째 치고 영국 여왕의 손자이며, 영국 왕위 계승서열 6위인 왕자와 결혼한 평민 신부매건 마클은 또 한명의 신데렐라로 유명해졌지만, 그녀가 털어놓은 왕실 생활의 어두운 그림자는 왜 이 부부가 왕실과 결별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됐다.

마클은 나는 왕자와 결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왕족이라는 일(job)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왕실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동화에서 읽었던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는 과연 행복했을까?’

신데렐라 원작은 결혼할 때까지다. 그 후의 이야기가 있다면 어떻게 전개될까? 지극히 현실적인 안목에서 신데렐라 제2부를 생각해보면 난 그녀의 화려한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왕자와 헤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클은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 왕실을 나왔지만, 왕실에서 불행하게 살았던 몇 명의 신데렐라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혼식(1956년)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레이스 켈리(출처-유튜브)
결혼식(1956년)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레이스 켈리(출처-유튜브)

수많은 영화를 통해 수십, 수백명의 신데렐라를 탄생시킨 할리우드 최초로 진짜 왕비가 된 배우가 있다. 그레이스 켈리(1929-1982).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에서 왕비로의 화려한 변신은 신데렐라 스토리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켈리 자신의 삶은 남편과의 불화, 말썽 피우는 세 남매, 엄격한 궁중생활로 불행했다. 그녀와 레니에 3세의 결혼은 처음부터 많은 갈등 요소를 갖고 있었다.

그녀의 가정사와 성장과정도 평탄치 않았다. 켈리는 가난한 아일랜드계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의 벽돌공장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갑자기 부유해졌다고 한다. 가정환경의 변화, 그리고 언니를 편애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식들에게 풀었던 어머니, 이런 상황에서 켈리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성인이 된 후 켈리는 몇 명의 남성과 연애를 했지만, 거의 축복받지 못하는 사랑이었다. 알려진 바로 첫 번째 상대는 대학 2학년 때 만난 연극학교 유부남 강사였고, 단역 시절에 만났던 동료 배우 역시 유부남이었다.

이후 러시아계 디자이너와의 혼전임신으로 약혼 발표했다가 결혼이 무산된 후 낙태를 했다고 하니 남자를 만나 갈 데 까지 간 켈리였다.

이후에도 그녀는 영화 출연 상대배우 대부분과 연애를 했는데, 그들 역시 유부남이거나 10살 이상 나이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남성 편력으로 인해 켈리는 할리우드의 색정증 환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고, ‘마릴린 먼로도 그레이스에 비하면 정숙한 숙녀라는 농담이 떠돌기도 했다.

켈리 같은 미인을 주변 남성들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고, 그녀 역시 거기에 맞장구 침으로써 그녀의 시끌벅적한 연애사가 성립됐을 것이다. 하지만 켈리의 남성편력을 단순히 색정증, 이런 측면으로만 볼 수 없었던 것이 바로 그녀의 성장과정 때문이다.

19세(1948년)때의 켈리(출처-유튜브)
19세(1948년)때의 켈리(출처-유튜브)

부모에게서 충분한 지지와 관심,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결핍으로 인해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그 결과 자신을 좋아하는 상대에게 금방 마음을 주고, 사랑에 빠졌을 것이라고 본다. 남자관계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충만감과 유대감이 크기 때문에 도덕적 비난은 기꺼이 감수했던 것일까.

켈리는 영화배우가 되면서 갈색 머리를 금발로 염색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품위있고 우아한 모습이 됐고, MGM 소속사의 트레이닝을 통해 매너와 자세 등을 익혀 스타로 완성됐지만, 내면의 자유분방함과 열정은 그대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모델을 하던 켈리는 브로드웨이 연극과 텔레비전을 거쳐 1951<14시간(Fourteen Hours)>에 단역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19522번째 출연했던 영화가 유명한 서부극 <하이눈(High Noon)>이었다. 명배우 게리 쿠퍼의 아내역을 맡아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은 켈리는 3번째 영화인 <모감보(Mogambo)>에서 클라크 게이블과 에바 가드너 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배우 데뷔 3년 만인 1954년 영화 <갈채(The Country Girl)>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켈리는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3편에 출연했는데, 그녀가 히치콕이 선호했던 이미지인 침착한 분위기의 전형적인 금발머리 미인에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히치콕 감독은 켈리를 눈 덮인 활화산”, “지성미와 우아미 아래에는 마릴린 먼로 못지않은 뜨거운 관능미가 흘렀다는 등으로 평가했다고 하니 그녀의 조신한 이미지 안에 숨겨진 열정을 알아차린 것이다.

영화 ‘이창’(1954) 출연 당시 상대역을 맡은 제임스 스튜어트, 히치콕 감독과 함께(출처-유튜브)
영화 ‘이창’(1954) 출연 당시 상대역을 맡은 제임스 스튜어트, 히치콕 감독과 함께(출처-유튜브)

켈리는 이후 1956년 은퇴할 때까지 불과 5년 동안 11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로서 누릴 수 있는 명성과 영예를 다 누렸다. 켈리가 남편 레니에 3세를 만난 것도 영화가 계기가 됐으니 영화는 그녀 인생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마음 깊은 곳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에너지를 숨겨놓은 채 드디어 켈리는 레니에 3세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웨딩TV - 우리 결혼할까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