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끼운 결혼의 첫 단추...반복된 결혼과 이혼

같은 상대와 두 번 결혼했다가 두 번 이혼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혼하고 다시 결혼했을까, 또는 두 번이나 이혼한 걸 보면 서로 정말 안맞는 거야, 이런 상반된 평가가 내려질 수도 있다.

젊은 시절의 리즈 테일러(출처-네이버 블로그)
젊은 시절의 리즈 테일러(출처-네이버 블로그)

배우 엘리자베스(리즈)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을 후대 사람들은 세기의 사랑’, ‘세기의 연인이라고 부른다. 드라마틱했던 첫 만남, 첫 눈에 반한 사랑, 불 같은 사랑, 불륜...두 사람은 정신과 육체를 불사르며 서로를 사랑했고, 집착했다.

훗날 공개된 두 사람의 연서(戀書)를 보면 당신이 나를 버리면 죽어버릴 거야. 당신 없는 삶은 없어라며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감정이 격렬하고, 맹목적인 면이 있다고 보여진다.

각각 8번과 5번의 결혼을 했던 리즈와 버튼은 생전 가장 사랑했던 사람으로 서로를 꼽았고, 리즈는 죽기 전 버튼의 묘지 옆에 안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10살에 첫 영화에 출연했고, 12살에 할리우드 영화에 데뷔했으며, 1951년 작품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녀 나이 불과 19살 때였다. 제작사의 혹독한 훈련, 연극배우였던 어머니의 치밀한 계획과 관리에 의해 그녀는 아역배우는 나이를 먹으면 인기를 잃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 함께 몽고메리 클리프트와의 한때(출처-리즈 테일러 공식 홈페이지)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 함께 몽고메리 클리프트와의 한때(출처-리즈 테일러 공식 홈페이지)

리즈의 어머니인 세라 비올라 웜브롯은 엄청난 극성파였다. 그리 이름을 알리지 못한 무명 배우 출신이어서 그런지 세라는 어릴 때부터 특출한 외모와 재능을 가진 어린 딸을 스타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 리즈의 생활을 사사건건 간섭하며 조종하려고 들었다.

리즈는 한창 뛰어놀 나이에 어른들 틈에 끼어 영화를 찍고 관리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녀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걷는 경로와는 사뭇 다른 인생을 살았다는 것은 18(1950)에 했던 첫 결혼을 봐도 알 수 있다.

너무도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 어른의 세계를 알아버린 조숙한 소녀는 결혼의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리즈는 어머니의 간섭과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 결혼을 서둘렀다는 말이 있다. 일종의 도피성 결혼이었던 셈인데, 사랑에 빠져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결혼했던 것이다.

콘래드 힐튼 주니어와의 첫 번째 결혼(1950년)
콘래드 힐튼 주니어와의 첫 번째 결혼(1950년)

결혼상대는 콘래드 힐튼 주니어(Conrad Hilton Jr.)로 그는 힐튼 호텔 창업자의 아들이었다. 당시는 리즈의 미모와 힐튼의 재력이 결합한 세기의 결혼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어린 신부는 불과 7개월 만에 이혼녀가 됐다. 힐튼의 알코올 중독과 가정 폭력이 원인이었다고도 하고, 리즈가 배우답게 가식을 즐겼으나 힐튼이 이를 견디지 못해 신혼여행 후 바로 이혼했다는 얘기도 있다.

여튼 이혼 후 리즈가 이 남자는 지옥 같다고 했다는 걸 보면 이 결혼은 어린 나이의 판단 착오였던 것 같다.

한번 하기가 어렵지, 일단 해보면 쉽다.’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때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테일러에게는 한번 해보니 쉬운 게 결혼이었다. 이혼을 염두에 두고 결혼하는 사람은 없다. 8번 결혼한 리즈도 한번 한번의 결혼이 다 신중한 선택이었겠지만, 범인(凡人)들이 보기에는 어찌 그렇게 빨리 사랑에 빠지고, 결혼도 쉽게 하나?’ 놀라울 정도다.

지옥 같은 첫 결혼을 끝내고, 리즈는 미련 없이 바로 다음 해(1952)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철부지 사랑의 전철을 다시 안밟겠다는 것인지, 이번 결혼상대는 스무살 연상의 영국 배우 마이클 와일딩(1912~1979)이었다.

20년 연상의 영국 배우 마이클 와일딩과의 두 번째 결혼(출처-네이버 블로그)
20년 연상의 영국 배우 마이클 와일딩과의 두 번째 결혼(출처-네이버 블로그)

20살의 리즈는 40살의 남편에게서 자상함과 편안함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20년을 살면서 그 절반의 시간 동안 영화 촬영을 했고, 10대에 이미 단역이 아닌 주요 배역으로 6~7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한번의 결혼과 이혼이라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겪었다.

남들 같으면 무지개빛 꿈을 꾸며 인생을 설계할 나이에 리즈는 이미 무지개 다리에 올라갔고, 그 위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입장이었다. 잠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시끄러웠던 첫 결혼을 잊어버리려는 듯 화려한 웨딩드레스 대신 성숙한 분위기의 투피스 정장을 입고 아버지뻘 되는 남편의 손을 잡고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와일딩은 신사적이고 다정다감한 성격이었지만, ‘리즈의 남편이라는 꼬리표에 큰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그도 배우로서 상당한 커리어를 갖고 있었으니 자기 이름으로 활동하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1949년, 마이클 와일딩이 잉그릿드 버그만, 조셉 코튼과 함께 출연했던 히치콕 감독의 영화 ‘Under Capricorn(염소자리)’(출처-네이버 영화)
1949년, 마이클 와일딩이 잉그릿드 버그만, 조셉 코튼과 함께 출연했던 히치콕 감독의 영화 ‘Under Capricorn(염소자리)’(출처-네이버 영화)

젊은이의 양지(1951)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음한 리즈는 와일딩과의 결혼 기간에 내가 본 마지막 파리(1955), 자이언트(1956)와 같은 힛트작에 연이어 출연했다. 특히 자이언트는 당대의 스타였던 록 허드슨과 제임스 딘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역할이었는데, 실제로 리즈는 제임스 딘과 사랑에 빠졌다.

와일딩과 결혼한 상태였고, 두 아들을 낳은 후였지만, 가죽 점퍼가 잘 어울리는 반항적이고 터프한 제임스 딘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리즈는 사랑에 솔직하고 본능에 충실했던 여자였다. 그녀에게 도덕적 잣대나 세간의 평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화 ‘자이언트’ 촬영 중 제임스 딘 옆에서 잠이 든 리즈(출처-네이버 블로그)
영화 ‘자이언트’ 촬영 중 제임스 딘 옆에서 잠이 든 리즈(출처-네이버 블로그)

하지만 제임스 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그녀는 크게 절망했다. 불같은 사랑이 끝났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강력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 그녀에게 수동적이고 무능력한 남편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1957년 이혼했다. 리즈의 나이 불과 25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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