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미라보 다리 위에서 강 건너의 연인을 그리며 눈물을 삼켰다

서울의 한강에는 31개의 다리가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발표된 자이언티의 노래 덕분에 양화대교가 유명해졌는데, 이것 말고는 그 많은 한강다리들이 사람들 마음에 와닿은 적은 거의 없다.

프랑스 파리를 가로질러 흐르는 센 강(Seine River)에도 한강다리보다 더 많은 37개의 다리가 있다. 차들만 생생 달리는 한강 다리들과는 달리 센 강의 다리들은 보행자 전용 다리도 있고,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가 있어서 강의 정취를 느끼며 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있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중 한 장면(출처-네이버 블로그)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중 한 장면(출처-네이버 블로그)

센 강 다리들은 각각 독특한 멋과 운치, 사연을 갖고 있어 그 자체가 관광명소가 됐다.

1991년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해진 퐁네프 다리(Pont Neuf), 영화 <인셉션>을 비롯해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비르아켐 다리(Pont de Bir-Hakeim),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여성의 이름을 딴 시몬 드 보부아르 다리(Passerelle Simone de Beauvoir), 전망이 가장 아름다워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코스인 퐁데자르 다리(Pont des Arts)도 있다.

그 중 연인과 헤어진 슬픔과 상실감이 깃든 다리도 있다. 바로 미라보 다리(Pont Mirabeau). 미라보 다리는 파리의 서쪽 끝에 있어 사람들이 자주 찾는 코스와는 동떨져있는 데다가 아름다운 다리들과는 달리 동으로 만든 조형물 몇 개가 고작인 평범한 모습이다.

파리 센 강의 미라보 다리(출처-위키피디아)
파리 센 강의 미라보 다리(출처-위키피디아)

그런 미라보 다리가 그 어떤 다리들보다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과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마리 로랑생(1883~1956)은 프랑스의 화가이자 시인이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기법으로 여성들을 주로 그려서 여성의 눈으로 여성을 그린 최초의 화가로도 불린다.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화풍으로 꾀꼬리라는 애칭을 얻었지만, 당당하고 독립적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했던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다.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는 로마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19세에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해 정착하느라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고, 시와 비평, 에세이 등을 발표하며 변방의 외국인에서 벨에포크(The Belle Epoque), 말 그대로 문화와 예술이 번창했던 좋은 시절의 주역이 됐다.

1907년 아폴리네르는 친하게 교류하던 피카소의 소개로 3살 연하의 화가 마리 로랑생을 만나게 된다. 24살의 로랑생은 당시 입체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던 몽마르트의 뮤즈였다.

두 사람은 첫 눈에 호감을 느꼈고, 서로의 예술을 찬미하고 격려하는 동반자가 됐다.

그러다가 1911년 아폴리네르가 연루된 유명한 사건이 벌어지고, 나중에 그는 혐의를 벗었지만, 당시 로랑생은 연인에게 크게 실망에 이별을 고했다. 상심이 컸던 아폴리네르는 술을 마신 뒤 집으로 가기 위해 터덜터덜 미라보 다리를 건너면서 강 너머에 사는 로랑생을 생각하며 시를 지었다.

그 유명한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 사랑도 흐르는데

다시 되새겨야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는 걸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머무니...

 

<미라보 다리> 는 프랑스 가수 레오 페레(Léo Ferré)가 노래로 만들어 널리 알려졌다. 강물처럼 흘러가 붙잡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인, 그 이전에 한 남자의 텅 빈 마음이 느껴진다.

미라보 다리에는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시구가 새겨진 동판이 붙어있다(출처-네이버 블로그)
미라보 다리에는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시구가 새겨진 동판이 붙어있다(출처-네이버 블로그)

미라보 다리에는 이 시구가 새겨진 동판이 붙어있다. 아폴리네르는 로랑생과의 짧지만 깊었던 사랑을 시에 담아 영원히 남긴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미라보 다리의 연인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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